대건이란 울타리 아래 어려움은
서로 나누고 기쁨은 함께 합시다!

자유게시판

퇴임인사 드립니다
등록일
2012-08-27
작성자
박옥상/22
조회수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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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께서 오늘 퇴임 미사를 한다고 하시기에 어제 밤잠을 설치며 지난 세월을 가만히 되돌아보았더니 우리 한울타리 학교가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1967년 3월 대건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대건고등학교 졸업까지 6년의 학창시절을 보냈고,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였던 1980년 모교인 대건고등학교에 부임해 18년 4개월, 1999년 효성여고로 옮겨 11년, 2010년 다시 대건중학교로 옮겨 2년 6개월을 근무했습니다. 교직생활 32년, 학창생활 6년 도합 38년을 한울타리 교문을 드나들었으니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오랜 세월동안 저는 많은 은사님, 선배선생님과 동기, 그리고 후배 선생님, 또 제자인 졸업생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모든 분들에게 받기만하고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많은 빚만 지고 떠나갑니다.

제가 명예퇴직을 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난 후에 여러 선생님들께서 많이 말리셨습니다.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꾸지람도 하셨습니다. 그 모두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는데 정년을 5년 반이나 남겨두고 명퇴한다는 저 때문에 그 동안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걱정하신 모든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는 다 접어두고 제가 명예퇴직을 그렇게 쉽게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말씀드립니다. 제가 58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럽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음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평생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쳤습니다. 지구의 역사 45억년을 1년으로 줄여 환산해보면 우리의 유구한 반만년 역사는 얼마나 되는 줄 혹시 아십니까? 선생님들 30초입니다. 그럼 우리 인생은 얼마나 될까요? 불과 0.5초입니다. 이를 두고 인생을 초로(草露)와 같다며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는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일찍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은 어차피 벌겋게 달아 피어오르는 화로 불에 떨어지는 한 송이 눈 꽃 같은 것이라며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했습니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붉은 화로에 떨어지는 한 점 눈송이라 우리 인간의 얄팍한 머리로 아무리 꾀를 써서 계획을 세워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안달하고 시기하고 비방하고 슬퍼했는지 후회됩니다.

아무 준비도 없었는데 예고 없이 다가온 퇴직이라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할지 걱정입니다. 지나간 긴 교직생활 중 있었던 수많은 희로애락(喜怒哀樂) 중에 좋지 않았던 감정은 다 잊어버리고 기쁘고 즐거운 행복했던 일들만을 추억하며 남은 세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자유인 박옥상으로 멋진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모든 선생님과 졸업생 여러분들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사랑에 다시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갈수록 교육환경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 어쨌든지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2012. 8. 23(목) 퇴임미사 중에 박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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